국외연수(일본)결과보고서

 

❑ 연수개요

연수기간 : 2011. 8. 22(월) ~ 8. 26(금) / 4박5일간

연수목적 :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분야 시찰을 통해 목포시 관광문화사업 방향 재고

연수장소 : 구라시키시(전통보존지구 : 경관조명사업 / 구라시키교육센터 만남의 교실),

나오시마초(문화관광정책), 오카야마 고라쿠엔 정원 시찰,

나라시 오사카성 및 동대사 시찰

연수참여 : 6명 (시의원 5, 의회사무국 직원 1)

소 속

직위(급)

성 명

목포시의회

부의장

허정민

의원

강정자

의원

여인두

의원

백동규

의원

이구인

의회사무국

전문위원

김영식

❑ 주요일정

일자

행선지

시간

주 요 일 정

비고

8.22(월)

1일차

목포

02:30

o 목포출발(02:30)

o 인천국제공항도착(07:00)

인천

09:45

o 인천→간사이 공항

o 간사이 공항 도착(11:10)

구라시키

오후

o 오카야마 고라쿠엔 정원 시찰

o 구라시키전통보존지구 야간조명시설 시찰

8.23(화)

2일차

구라시키

나오시마초

오전

o 구라시키현 의회 방문

- 전통보전지구 현황 청취 및 질의 문답

오후

o 구라시키 전통보존지구 현지시찰

o 나오시마초 이동

8.24(수)

3일차

나오시마초

오전

o 나오시마초 의회방문 및 문화관광

정책 브리핑 청취

오후

o 나오시마초 베넷세하우스,

가옥프로젝트 시찰

8.25(목)

4일차

구라시키

오사카

오전

o 구라시키현 교육센터 방문

- 부등교학생 교육운영 브리핑 청취 및

질의 응답

오후

o 교육센터 시설 견학

o 오사카 이동

8.26(금)

5일차

나라

오사카

10:00

17:50

o 동대사 및 오사카성 관람

o 간사이 공항 출발

인천

20:10

o 인천공항 도착 / 목포도착(03:00)

 

 

연수총평

관심분야별 소그룹 연수 추진

2010년 11월, 전체의원22명과 의회사무국 직원까지 총 30여명이 넘은 수가 모두 함께 일본연수를 다녀온 후 많은 수가 참가하는 연수의 비효율성, 연수내용의 부실함, 연수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문지, 관광가이드(통역)의 비전문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에는 의회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관심분야별 소그룹 연수를 추진하게 되었다.

분야별 소그룹 연수로 진행되어 기관 방문 시 시간에 쫒기지 않고 질의응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며, 이동시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없었고, 현지에 능통한 전문가이드(통역) 덕분에 소수의 참가자들 또한 현지공무원들은 물론 주민들과도 친밀한 소통을 할 수 있어서 더욱 효과적인 연수가 될 수 있었다.

내실 있는 연수를 위한 꼼꼼한 준비과정

연수준비과정에서 연수팀장과 현지 가이드가 참가자들의 요구사항과 현지에서의 준비상황 정보를 사전에 수시로 나누고 조절함으로써 보다 알찬 연수가 되도록 노력하였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숙박비와 식사비를 최대한 아끼는 대신 본연수내용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지방자치전문 통역가이드의 중요성

이번 해외연수를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은 무엇보다도 통역가이드의 역할이었다.

국외연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역가이드 선정이 핵심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번 국외연수에서는 특별히 지방자치전문 통역가이드 선정에 만전을 기했다.

통역가이드는 현지 지자체의 기본정책 및 행정지원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연수목적에 부합되는 지역 조사 및 선정, 현지 기관 및 업무 담당자의 현장 동행 섭외, 의원들의 질의응답 내용에 대한 충분한 숙지 및 통역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국외연수 통역가이드는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지방자치분야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목포지역 출신 인사를 섭외함으로써, 연수 참가자들이 연수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방문지를 면밀히 선정하고 방문지에 대한 통역자료까지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하는 등, 연수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촘촘하게 일정을 준비해 주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목포시와 방문지간 문화관광 분야의 정책과 현황을 비교분석해 볼 수 있는 풍부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어서 더욱 만족스러운 연수가 될 수 있었다.

일정별 현지 시찰 보고

8월 22일(월) 연수 1일차

오후 : 오카야마 고라쿠엔 정원 시찰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를 이용해 바로 오카야마로 향했다.

이동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오카야마 고라쿠엔 정원은 오카야마가 자랑하는 에도 시대 대묘(大名)정원이라고 한다.

이 정원은 3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오카야마현의 영주인 이케다 쓰나마사가 가신인 쓰다 나가타다에게 명하여 1687년에 착공하여 1700년에 일단 완성된 정원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영주들의 취향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에도 시대의 모습이 큰 변화 없이 그대로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 정원에 대해서는 에도 시대의 옛 그림이나 이케다 가문의 기록, 문서 등에 다수 남아 있어 그 역사적인 변천도 살펴볼 수 있다.

고라쿠엔 정원은 일찍이 영주가 정양하는 장소 그리고 빈객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연중 한 때를 정하여 영지 내의 일반인들에게도 관람이 허락되었는데, 1884년 오카야마현에 양도된 후 정식으로 일반 공개되었다.

1934년의 수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전화에 휩쓸려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에도시대의 옛 그림 자료를 바탕으로 복구 작업이 실시되었고, 195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특별 명승으로 지정, 일본의 역사문화 유산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었다.

넓은 잔디밭, 연못, 인공 조산 그리고 다실 등은 정원의 산책로, 수로와 잘 조화를 이루어 천천히 걸으면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회유식(回遊式) 정원이라고 한다.

실제 4만평 정도의 넓은 정원을 산책하며 가장 궁금하고 놀라웠던 것은 공원 중앙의 거대 연못은 물론 여기저기에 배치된 작은 연못의 물이 공원 사이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수로로 연결되어 고여 있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수로의 높이가 수평인 것 같은데도 미세한 차이의 높낮이 설계를 해서 늘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연못이나 수로에는 수생생물이 살고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이 물은 주변에 있는 아사히가와 강에서 끌어들여와 연못과 작은 폭포 등에 쓰이고 정원 곳곳을 가로지르며 흘러 다시 아사히가와 강으로 되돌아간다.

마음을 사로잡는 자연 그대로의 연못과 수로를 보면서 우리시의 삼학도 복원화사업이 떠올랐다. 삼학도를 끼고 흐르는 큰 수로는 바닥은 물론 양쪽 둑까지 모두 야무지게 콘크리트 옹벽을 쳤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두 개의 통문도 설계와 시공이 잘못되어 바닷물이 들고 나는데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고인 물에 부유물질이 생기고 녹조가 발생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약 5,600평 정도의 넓은 잔디밭과 곳곳의 작은 숲, 연못과 잘 어울리는 나무들, 다실들, 계절화초들도 조화롭게 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이 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정원 안에 논을 만들어 벼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입구는 물론 그 넓은 정원 어디에서도

시멘트로 포장된 산책로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인공적인 구조물 또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에도 시대의 정원문화를 자연 상태 그대로 아름답게 유지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우리나라의 슬로건이 떠올랐다.

우리도 우리다운 전통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고 관광 상품화하는 것이 관광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까. 사실 다른 나라로 관광을 가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것을 보러 그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 나라,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보기위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포시의 관광문화정책 방향 또한 새로운 인공구조물 중심의 관광 사업이 아닌, 목포가 가진, 목포만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런 소재들을 적극 발굴하여 이것을 관광 상품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행정에서 관심을 두지 않거나 방치해온 목포지역의

문화유적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지방문화재로 등록하는 일부터 추진해야 한다.

특히, 동일한 장소에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 사업 -'삼학도 복원화 사업'과 '삼학도 공원화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목포시는 이제라도 삼학도에 대형건축물 건립을 중단하고 본래의 복원화 사업 취지에 맞게 사업을 추진시킴으로써 삼학도가 자연친화형의 시민휴식공간으로, 또한 복원하려고 하는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연될 수 있도록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소삼학도 전경을 전면에서 가로막는 바다체험관, 요트마리나 계류장, 그리고 이제는 중삼학도 전경을 가로막을 노벨평화상기념관까지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친화형 삼학도를 복원하기 위해 그 동안 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백억의 예산을 목포시는 스스로 부정해버린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만천하에 드러난 부실공사로 말이다.

8월 23일(화) 연수 2일차

오전 : 구라시키 시의회 방문(전통보존지구 현황 보고 청취 및 질의응답)

오후 : 전통보존지구 현지시찰

오전 일찍 구라시키 시의회를 방문했다. 의회 하라 부의장과 관계공무원들이 직접 나와 따뜻하고 정중하게 맞이해 주었다. 간단한 상견례식을 마치고 관광문화과 과장과 계장, 문화재보존과 과장과 계장이 차례로 전통보존지구에 대한 역사와 현황에 대해 장시간을 할애하여 꼼꼼하게 브리핑해 주었다. 참가자들의 질의도 계속 이어져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전 9시 45분부터 시작된 구라시키 관광문화정책에 관한 보고 청취 및 질의응답이 1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의회 공식 일정이 끝나고 회의장을 돌아보았는데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양쪽 벽면과 앞면에 이솝우화 벽화가 민화형태로 그려져 있었는데, 이 의미는 ‘시민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점심식사 후 전통보존지구를 시찰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관광문화과와 건설과 과장 계장 실무관들이 모두 현장에 나와 보존지구 구석구석을 함께 돌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구라시키시는 일본에서 30번째로 큰 시이며 380만㎡ 면적에 43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구라시키라는 지명은 '위안의 공간', '휴식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에 걸맞게 구라시키시는 이 도시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심신을 치료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구라시키에는 전통보존지구 이외에도 유가산의 사쿠라, 세토나이카이 절경, 세토대교, 50여개의 주변 섬들, 온천시설, 오하라 미술관, 풍부한 쇼핑시설들, 번지점프 등 위락시설, 다양한 축제 등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인근 타시군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화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근지역의 풍부한 문화관광자원까지 활용하는 관광벨트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구라시키시는 1584년 얕은 바다를 막아 농지로 개발된 간척지로 1600년대 수송집산지로서 주변 농지 지대의 중심지로 번영을 통해 1800년대까지 활황을 이룬 도시이다.

현 미관지구의 중심인 구라시키 강변은 물자를 싣고 내리며 운반하는 운하의 역할을 하면서 상업이 성행하여 상인들의 큰 저택이 즐비했고 칠을 칠한 지붕, 흙으로 지은 창고, 하얀 칠을 한 벽과 창을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보존지구의 주요한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후 경제계 실력자인 오하라의 등장과 함께 현대적인 서양식 건축이 세워지기 시작하였으며 전통 거리 보존의 중요성을 호소한 오하라 소이치로의 활동과 적극적인 행정으로 1969년 보존계획을 고시 “구라시키 강변 특별 미관지구”로 지정하였고, 1979년 국가의 “중요전통 구조물군 보존구”로 선정되었다.

또, 1990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배경보전 조례를 제정했고, 2000년에는 건축기준법에 따른 경관조례를 제정, 그 후 경관법이 시행되어 2005년데 경관법에 따른 경관조례로 개정하여 적극적인 보존대책을 세우고 있다.

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거리, 천재의 피해도 적었고 전쟁 피해도 입지 않고 오늘을 맞이한 구사시키는 전통보존지구의 문화적 가치를 일찍부터 눈여겨 온 선각자들의 많은 노력과 적극적인 행정, 지역 주민의 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일본이 자랑할 만한 역사문화 관광지로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는 총 621개의 건축물이 보존되고 있고 이 중에 240 여 세대 496명이 실제 살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 거리를 지키고 키워나가자는 자발적 주민자치모임이 있는데, 행정은 주민들의 협력과 이해를 전제로 펼쳐나간다고 한다. 또한 현실적 요구로 인해 현대식으로 일부개조를 원하는 상가들과 전통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전체 주민들의 이해가 간혹 충돌할 때도 있는데, 이때에도 행정이 나서서 중재하거나 간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자치모임 심의회(15명으로 구성)에서 이해를 달리하는 당사자들을 만나 중재를 하고 분쟁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시에서는 다만 경관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주민이나 공로를 세운 주민을 추천받아 표창을 하고 있다고 한다. 행정은 '사람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지지하고 지원할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니 '주민 중심의 행정지원'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전통보존지구내의 일반적인 건축물들은 외부는 전통적으로 보존하고 내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현대식으로 일부 개조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축물의 경우는 건축물보호법에 의해 중요문화재로 지정, 내부 또한 함부로 개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하라 가문의 1,2대 가옥은 국가중요문화제로 지정되어 외부는 물론 내부도 개조할 수 없다. 에어컨 실외기나 보일러도 가능한 한 가옥 뒷편에 설치하거나 전통가옥과 어울리도록 자연소재로 덮개를 해 놓은 것이 눈에 많이 띄었다.

또한 화재를 대비한 소방호스를 돌출부위가 없도록 해서 도로 바닥에 설치한 것도 독특했다.

이튿날로 예정되어 있는 전통보존지구 시찰을 앞두고, 첫째 날 밤 저녁을 먹은 후 야간조명사업을 보기 위해 이 거리를 미리 둘러보았다. 낮에는 야간조명사업 시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에는 없었지만 발품을 팔았다. 시의회에서 야간조명사업 현황에 대해 보고를 받겠지만 눈으로 직접 전통보존지구 야간조명사업을 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다음날 구라시키현 건설과장의 야간조명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운하를 중심으로 한 거리에는 전선을 모두 지하에 묻어 전봇대에 전선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경관을 정리했는데, 대신 전통가옥과 잘 어울리는 가로등을 띄엄띄엄 설치하고 가옥대문에도 은은한 조명 등을 설치하여, 전통가옥의 밤실루엣도 아름답게 감상하고, 수양버들이 낭만적인 운하의 밤풍경도 한결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은은한 조명등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밤길을 편안하게 밝혀주었음은 물론이다.

이 야간조명사업은 한편으로 체류형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며, 야간조명사업은 '머물게 할 것', '실물을 보여줄 것'이라는 방향에 따라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가옥거리에 이와 어울리는 조명사업을 함으로써 관광객들이 이 아름다운 거리의 밤풍경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실제 '나만의 심야 이벤트'를 통해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아름다운 야간경관을 즐기며 호젓한 심야산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숙소 내부는 침대방도 있고 다다미방도 있지만 우리가 내다본 전통가옥 숙소는 다다미방으로 꾸며져 있어서 특유의 동양적인 분위기와 단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근처에 즐비한 음식점에서는 일본의 전통음식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배를 타고 이곳 운하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체험용 작은 나룻배들도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는 비가 많이 와서 아쉽게도 배를 타볼 수는 없었다.

목포시도 체류형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숙박업소와 관광회사에 이런저런 명목의 여행경비지원을 하고 있지만, 실제 체류하면서 즐길 수 있는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그런 지원사업은 장기적으로 결코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꼭 가고 싶은 곳, 꼭 머물고 싶은 곳이라면 굳이 관광버스비와 숙박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곳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에 이 지구에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는 조례가 제정된 후 지금까지 높은 현대식 건축물은 들어서지 않고 있으며, 운하에는 안전을 위한 특별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신 층을 두고 둑을 이중으로 설치하여 물에 빠지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운하 양쪽으로는 수양버들이 길게 심어져 있는데 원래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던 것을 20여년 전에 일부를 제외하고는운하와 잘 어울리는 수양버들로 수종을 바꿔 심어 이제는 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전통보존지구를 대표하는 관광소의 하나로 오하라미술관을 들 수 있는데, 이 지역의 전통-현대문화 보존운동을 시작한 오하라 소이치로가 세운 현대건축양식의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애초 오하라가 세계의 현대미술 양식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세계에서 다양한 현대미술품을 전시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꾸준히 세계적인 현대미술작품들을 구입하여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미술관 안쪽으로는 넓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일본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미술품이 따로 전시되는 미술관이 있었는데, 이 미술관 앞 잔디정원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양쪽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가운데 위치한 전통가옥 음식점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도 만끽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전통을 기본으로 보존하고 있는 이 지역의 현대식 건축물 또한 전통적 분위기를 헤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잘 어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라시키의 관광문화 정책 방향이 그대로 읽혀지는 대목이었다.

우리 목포시의 야간조명사업은 처음부터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많은 우려와 반대 속에서 진행되었다. 빛의 도시를 표방하며 진행된 원도심 루미나루에는 그 화려한 아치형 빛 기둥으로 인해 처음에는 잠깐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짐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불은 거의 켜지 않는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 이제는 치울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고하도와 유달산의 야간조명 또한 생태계 파괴, 야간경관훼손, 예산낭비 등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된 사업이지만 현재는 더 이상 시설보완을 하고 있지 않는 형편이다. 예산을 낭비하고 유달산과 고하도의 동식물을 훼손하면서 결국 시공사 배불리기만 했다는 얘기다.

8월 24일(수) 연수 3일차

오전: 나오시마초 의회 방문(나오시마초 관광문화 정책 보고 청취 및 질의응답)

오후: 나오시마초 현지시찰

구라시키에서 오전 8시 배를 타고 나오시마초로 들어갔다. 여객선이 아주 컸는데 그 많은 객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섬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만으로도 나오시마초의 관광문화사업의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9시부터 12시까지 나오시마초 의회에서 요모기의장과 하마다 초장 및 관계자들과 상견례 및 나오시마초 관광문화사업 정책과 현황을 브리핑 받고 질의응답을 했다.

가이드(통역)가 연수 전에 현지 방문지에 대한 통역자료를 보내 준 덕분에 이곳에서의 브리핑 또한 한결 이해하기가 좋았다. 구라시키 시의회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초장과 담당공무원의 자세한 브리핑, 질의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 이어졌다.

요모기 의장과 부의장 또한 장시간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날씨는 무섭게 뜨겁고 더웠지만 우동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 내내 관계공무원과 베넷세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나오시마초의 주요 관광지- 지중미술관, 우중환 미술관, 베넷세하우스, 가옥프로젝트 마을 등을 돌아보았다.

나오시마초는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막부 직할 영지로 막부 말기에 접어들어 에히메현, 구라시키현에 속해 있다가 후에 가가와현의 일부가 되었고 1954년 가가와 본토의 시정촌으로 합병하지 않고 도서부 단독으로 초제를 시행하고 있다.

나오시마초는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북쪽으로 약 13㎞, 오카야마현 다마노시 남쪽으로부터 약 2㎞ 떨어진, 27개의 섬으로 구성된 자치체이며 이 중 병풍도, 향도, 나오시마 3개의 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나오시마초는 14.23㎡ 면적에 1,5193세대 3,300여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작년에는 주민의 100배가 넘는 관광객이 찾아와 총무대상의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나오시마라는 이름은 '주민들의 솔직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오시마 북쪽지역은 산업단지로써 미쓰비시 금속제련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주민의 70%가 미쓰비시 제련소를 다닌다고 한다. 1917년 미쓰비시합자회사 동 제련소 가동으로 아유산가스가 유출되어 인근 나무들을 다 죽여서 민둥산이 되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시설의 현대화 등을 통해 문제요인을 극복하였으며, 언젠가 공장 오폐수가 흘러 수질오염을 일으킨 적도 있지만 빠른 복구작업을 했고, 그 외의 환경오염 문제는 헌재까지 크게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오시마초 의회 의장과 초장은 이와 관련하여 그 어떤 기업체라 해도 주민들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행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들을 웃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베넷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산업단지의 활성화로 50여년 동안 섬의 경제가 매우 좋아지기도 했지만, 1970년 금속제련사업 고도화와 합리화로 인구가 감소했고, 동의 국제가격 하락으로 신규사업 개척을 서둘러야 할 처지에 직면했으나, 재자원화 환경센터를 유치하여 자동차, 컴퓨터의 분쇄쓰레기에서 금, 은 등을 추출 재자원화에 성공하면서 고용창출을 이뤄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누구나 기피하는 산업폐기물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문화예술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금속제련소가 있는 지역답게 금속제품을 가공하여 지역특산물로 상품화하고 있으며 천연소금 또한 자랑할 만한 이 지역 특산물이라고 한다.

특히 1985년부터 베넷세라는 파트너가 등장하면서 관광•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나오시마 남부를 사람과 문화를 키우는 창생지역으로 정하고 “나오시마 문화촌 구상”을 발표, 호텔 겸 미술관인 베넷세 하우스 건설을 시작으로, 2004년에 클로드․모네, 월터․디․마리아, 제임스․터렉 작품 등을 전시하는 지중미술관 개관, 이중환 미술관 개관, 건축계의 노벨 사나아 설계사무소가 설계한 '바다의 역', 나오시마 섬의 처음과 마지막에 만나는 조각설치예술작품 ‘붉은 호박’ 등으로 나오시마초는 현대예술의 섬으로 각광받고 있다.

베넷세와 손잡은 이후 섬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급상승했고 젊은층의 고용창출 효과도 있어 가속화되던 마을의 고령화도 멈추었다고 한다. 베넷세의 나오시마초 문화관광사업 프로젝트에 주민들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사업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지금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섬 주민들이 육지로 떠나고 빈집이 된 민가를 빌려 공간을 개조해 예술 작품으로 창조해놓은 가옥프로젝트는 1998년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7개의 아트 하우스가 있다.

나오시마의 에코타운 사업인 '슬러그 도예 체험 공방'과 페트병을 재생하여 옷을 만드는 '에코 T셔츠 프로젝트', 바다반딧불이 등 나오시마의 자연생태를 소개함으로써 섬밖의 사람들과 환경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민 누리집', 주민들이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와노사토 창생 프로젝트' 등은 모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환경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또한 옥호프로젝트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전통명가에서 자기가 원하는 옥호를 지어 초에 신청하면 초에서 옥호를 새긴 작고 예쁜 표찰을 무료로 설치해 주는 사업이다. 마을을 돌아보다 가끔 잘 보존 관리되고 있는 명가 대문에 옥호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년 전에 지어진 가옥을 개조해 물을 채우고 그 안에 반짝이는 디지털숫자들을 설치해 마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처럼 만들어 놓은 ‘카도야 등’(이 작품은 주민 125명이 참여했다), 건물 전체를 예술작품화 한 옛 치과 건물, 목욕탕, 창고...., 이런 가옥프로젝트 사업 또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로 더욱 발전하고 있으며 여기에 행정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 있어서 나오시마초는 관광 문화 예술의 섬으로 계속 발돋움하고 있다.

대기업이 기획투자하고, 초에서 행정지원을 하며,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나오시마초는 섬 지역 특유의 관광문화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듯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오시마 관광문화 프로젝트를 기획에서 투자까지 모두 베넷세라는 회사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베넷세 책임자를 직접 만나 ‘나오시마 문화촌 구상’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사전섭외를 시도했지만 회사의 책임 있는 간부들이 섬에 상주하지 않고 있는데다, 이미 선약이 있어서 결국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나오시마초장과 베넷세 안내직원들의 전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베넷세의 사업의도와 태도를 믿는 편이며, 그래서 주민참여형 프로젝트에도 적극 협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사업이라 할지라도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주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업은 인정할 수 없다는 나오시마초와 의회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었다.



나오시마초의 자랑으로 여기는 3개의 미술관이나 옛 가옥 내부를 예술작품화한 7개의 아트 하우스, 내 외부를 모두 예술작품화한 여러 개의 건물 내부를 촬영할 수 없어서 사진기록을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호텔에서 덮밥과 우동 등으로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수 평가 시간을 가졌다.

그 외에, 지금까지 의원 해외연수 때마다 관례적으로 진행되어왔던 사무국 직원 후원금을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지난해 국외연수 때와 마찬가지로 일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결정하고 이런 뜻을 정중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또한 사무국 직원의 연수 또한 의원들의 연수를 보조하기 위한 역할이 아니라 의원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연수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연수 참가자는 직책과 무관하게 모두 다함께 배려하고 노력해야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8월 25일(목) 연수 4일차

오전 : 구라시키현 교육센터 방문(부등교 학생을 위한 만남의 교실 운영 보고 청취 및 질의응답 후 만남의 교실, 과학관 시찰)

오후 : 오사카 중심상가지역 시찰

아침 9시경. 구라시키현 부등교 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교육센터를 찾았다. 우리 목포시에서도 교육지원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지만 부등교 학생에 대한 실제적인 지원은 전무 하다시피 한 형편이다. 연수에 참가한 5명의 의원이 그 동안 의정활동을 하며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하는 한 해 400명 안팎의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해 왔던 터라, 이번 연수가 관광문화분야 연수이긴 했지만 그래도 교육지원, 특히 부등교 학생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일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꼭 보고 싶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구라시키현에서 오너 계장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센터를 안내해 주었고, 센터에서는 센터장님과 부등교 학생들을 위한 ‘만남의 교실’ 운영책임자가 직접 맞이해 주었다. 간단한 상견례와 함께 또다시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부등교 학생을 위한 지원사업 전반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고, 질의응답도 계속 되었다.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 만남의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부등교 학생에 대한 정책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지침으로 일본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있는 독립적인 대안학교 형태는 일본에 없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와는 다르게 교육이 지자체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정책의 큰 방향은 정부에서 결정하지만, 예산은 전적으로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형태이다.

모든 교육지원은 기본적으로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지자체 교육위원회에서 예산을 따로 편성하여 지원하고 있다. '만남의 교실'이 부등교 학생을 위한 대표적인 대안교육시설인데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교의 출석으로 인정되는 제도이다. 물론 복지시설 등에서도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다고 해서 출석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만남의 교실'만이 출석으로 인정된다.

구라시키교육센터는 구라시키현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센터는 구라시키현 교육위원회 산하 조직이기도 하다. 1993년 센터 내에 '구라시키 만남의교실'이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3년 후에 고지마에 두 번째 교실을 두었다. 그 후 7년 후인 2003년에 중앙교실, 다마시마 교실이 생겼고, 2005년에 마비교실이 설치되어 오늘까지 총 5개의 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만남의 교실'은 15명~30명 정원으로 구성되는데 지도원은 모두 3명~4명씩 두고 있었다. 지도원은 교사공무원으로 순환근무를 하며, 그 외 촉탁직원들이 근무하는데 부등교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교장퇴임자, 임상심리상담사, 부등교 학생 지원활동에 애정을 가진 신참경력자 등으로 구성된다. 교육경력과 경험은 다르지만 모든 지도원은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실제 우리를 맞이하고 직접 안내를 해준 센터장은 유치원 교사이고,

'구라시키 만남의 교실' 책임자는 중학교 교사이기도 했다.

5개의 '만남의 교실'에서는 그림그리기, 요리활동, 독서, 과자만들기, 언니오빠가되어 유치원생들과 교류하기, 산책, 음악활동, 수확하기, 소풍, 전문강사가 진행하는 우주학습, 지역봉사자가 진행하는 짚신공예, 정월 장식품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친밀감을 높이고 즐겁게 소통하도록 돕는다. 스포츠, 문화교류 등 프로그램의 큰 주제는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한다.

'만남의 교실'은 부등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고등학생은 아무래도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되는 듯 했다. 부등교 학생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학교에서 담임이나 상담교사가 상담과 프로그램을 통해 등교지도를 돕고, 그래도 어려울 경우 '구라시키교육센터'내 '만남의 교실'에 연결해 주고 있었다. '만남의 교실'은 상담을 통해 부등교 원인을 찾아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학교 담임교사나 학부모와도 수시로 상담하고 소통하여 학생에 대한 지도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교실에도 나오지 않고 중도포기한 학생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방문하여 개별적인 만남을 가져간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만남의 교실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모두 진학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구라시키현에서는 한 해 400여명 정도의 초중학생들이 부등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목포시와 비슷한 형편에 있었다. 5개의 '만남의 교실'은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와 프로그램 교환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 마침 5개 시설 책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5개의 '만남의 교실'에서도 400여명의 부등교 학생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돕지는 못한다고 한다. 다만 한 명이라도 더 도와서 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한다고 했다.

20년 전부터 부등교 학생을 위한 교실을 운영해 오고 있지만 각종 통계를 통해 보다 과학적으로 지도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라고 한다. 구라시키현 교육위원회-구라시키교육센터-만남의 교실 순으로 지원되는 예산은 대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되는데, 만남의 교실은 기본적으로 '사람사업'이기 때문에 지도원들에 대한 지원을 1차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도원들에 대한 연수, 복지보장에 우선 지원한다는 것이다. 지도원들이 안정되고 좋은 생각을 가져야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부등교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곳곳에 '만남을 교실'을 설치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제도가 몹시 부럽기도 했다. 공교육에서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지원하고, 그것이 어려운 학생들은 학교와 부모와 교실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목포시의 '명품교육도시, 우주인재양성 교육도시, 글로벌인재육성 교육도시, 교육특구조성 사업' 등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적최우선 교육철학과 정책이 가져올 결과는 4%의 성공자와 96%의 낙오자를 양산해 낼 뿐이다.

지금 준비 중인 목포시교육발전계획 2차 5개년 사업이 부디 우리 아이들에게 협력과 상생, 공동체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교육에서 소외되고 아픈 아이들이 없이 저마다 자신의 소질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마음껏 계발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준비되길 간절히 바란다.

'만남의 교실'을 돌아본 후, 교육센터 1층에 있는 과학센터를 둘러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과학관에 와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실물중심, 체험중심 과학관으로 체험을 통해 과학의 기초와 원리를 학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삼학도에 세워지고 있는 어린이바다체험관 내부가 어떻게 채워질 지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의 계획을 보면 시청각 시물레이션 중심으로 채워질 것 같은데, 실제 체험중심으로 내부가 채워지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체험관이 바닷물 한 방울 묻혀보지 못하는 체험관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과학관 체험 모습>

과학관과 같이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과학관 체험을 위해 온 아이들과 부모들이 대부분 이 식당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식당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점심 식사 후 둘째 날과 오늘까지 안내를 맡아 수고를 해주신 오노계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하고 오사카로 이동했다. 비록 간단한 점심이지만 감사의 표시로 오노씨께 식사대접을 하려고 했지만 오노씨는 끝내 자신의 식사비를 자신이 따로 계산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오사카에 도착,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저녁도 먹을 겸, 중심상가지역인 보톰거리를 돌아보았다. 한마디로 사통팔달이었다. 먹거리, 가구, 옷 등 품목별 상가가 잘 정비된 구역들에 배치되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저녁시간이라서 그랬는지 구역마다 거리에는 시민과 관광객 등 사람들로 넘쳐났다. 규모면에서는 비교할 바 없이 크지만, 인파로 치면 꼭 서울의 명동거리를 연상케 했다. 서양 관광객도 많았지만, 언어를 들어보면 중국 관광객이 더 많아 보였다.

한 가지 눈에 들어온 것은 목포시 재래시장의 비가림막처럼 중심구역을 따라 길게 해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처럼 투명한 비가림막이 아니라 빛 차단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낮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답답할 것도 같았다. 밤이었는데도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상가구역의 간판들은 가게마다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어수선하지 않도록 정비되어 있었고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중앙구역을 따라 길게 설치된 자전거 주차장이 인상적이었다. 매우 많은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전거문화, 자전거 주차장이 그 번잡한 상가중심에까지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도심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시운하, 도시하천이 오사카 상가중심가 근처에도 있었는데,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도심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흐르는 운하를 만끽할 것 같았다. 일본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까지도 마을하천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처럼 하천을 복개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부럽기도 했다.

8월 26일(금) 연수 5일차

오전: 관광문화 현지시찰(나라시 동대사, 오사카현 오사카 성)

연수 마지막 날은 좀 여유가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가이드는 아침부터 다시 서둘렀다. 날씨가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뜨겁고 더웠는데도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현장을 한 곳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 가이드의 준비된 성의가 고마워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동대사를 둘러본 후 오사카성 매점에서 라면과 부침개로 이른 점심을 먹고 오사카 성을 둘러보았다.

나라시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차창밖으로 보이는 사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대사의 사슴들이 시내 차도 인도에까지 내려와 한가롭게 누워 쉬고 있거나 풀을 뜯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도 그런 풍경에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사슴을 지나치고 있었다. 동대사에 들어서자 사슴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넓은 동대사는 제초작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사슴들이 풀들을 다 뜯어먹고 있었으므로..동대사의 거대한 본당을 비롯한 말사들의 건축양식도 관광객에게는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겠지만, 호수를 비롯한 넓은 정원, 숲, 그리고 사람을 전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붙임성있게 대하는 사슴들 또한 동대사만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동대사는 일본 나라시에 있는 일본불교 화엄종의 대본산으로 남도 7대사의 하나이다. 745년에 쇼무왕의 발원으로 로벤이 창건하였다. 본존은 비로자나불로 앉은 키 16m, 얼굴 길이가 5m나 되어 속칭 나라 대불이라고 한다. 일본 삼계단의 하나로서 중요시되고, 헤이안시대를 통하여 고후쿠사와 더불어 일본 불교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사역이 넓어 당우가 흩어져 있지만, 중심인 대불전, 즉 금당은 에도시대에 재건된 것으로서 높이 47.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오사카 성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하기 시작해 3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완성한 성이다. 성이 완공된 당시에는 지금의 5배나 큰 규모였고 오사카를 손에 넣었던 히데요시는 천하통일을 꿈꾸며 이 거대한 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죽은 뒤 1615년 그의 아들 히데요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 성이 불타는 등 그 후로 잦은 전란과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천수각은 1931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5층 8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7단까지 전시관으로 꾸며져 오사카성의 역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 오사카 여름전투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두었는데, 사실적인 모형을 이용한 디오라마, 미니어처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여 흥미를 끈다.

가장 높은 층에는 오사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북서쪽에 있는 고쿠라쿠바시는 해자 위를 건너 곧바로 천수각에 도착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오사카성공원은 천수각을 중심으로 잔디밭으로 둘러진 가나쿠라창고, 혼마루, 오사카영빈관으로 구성되어 관광명소로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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